성폭행 당하는 할머니들 '도대체 왜?'

“저항? 늙은이가 뭔 힘이 있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성범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분노로 가득하다. 성범죄는 ‘영혼을 할퀴는 행위’라고 할 정도로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잇따라 발생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물밑에 가라앉아있는 노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 <일요시사>가 조명해 본다.

한국은 전 세계서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나라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내놓은 ‘2015년 한국 사회 지표’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총 인구 5062만명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3.1%를 차지했다.

고령사회 진입
문제 폭발 직전

통계청이 예측한 바에 따르면 2040년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32.3%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30여년 뒤에는 전체 인구 3명 가운데 1명이 현행 복지법상 노인(65세 이상)인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이처럼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삶은 빈곤과 학대, 범죄, 자살 등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전 세계 노인빈곤율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의 절반 정도(48.6%)가 상대적 빈곤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타 국가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상대적 빈곤을 겪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비중 또한 커졌다. 이는 노인자살률 증가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졌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70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16.2명이었다. 최소 5.8명에서 최대 42.3명인 다른 나라와 비교해 최대 20배나 높다.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급증
대상 범죄 늘어나는데 대책은 없어

문제는 빈곤, 정서적 불안정, 자살 등 고통받고 있는 노인들이 범죄에도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이 중 여성 노인에 대한 성범죄는 특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수치나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들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언론에 공개된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60세 이상 피해자를 상대로 한 강간, 강제추행 등의 성범죄는 2012년 304건, 2013년 417건, 2014년 445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여성 노인을 상대로 한 범죄건수는 2012년 297건, 2013년 394건, 2014년 419건으로 전체 범죄 건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범죄 신고율이 10% 미만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여성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고려하면 공개된 피해자의 숫자는 극히 일부일 수 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2012년 11월 진행한 ‘여성노인성폭력 토론회’서 서재인 쉼터소장과 신상희 가정폭력상담소장이 발표한 발제문에 따르면 여성 노인은 성폭력 범죄에서 가장 매력적인 범죄 대상으로 꼽힌다.

▲첫 번째 표적 이유 = 여성 노인의 상대적으로 허약한 신체적 특성이 자기 방어와 도주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손쉬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령의 독거노인
표적되기 쉬워


2015년 10월, 80대 여성 노인을 상대로 50대 남성이 저지른 엽기적인 성폭행 사건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사건의 가해자인 김모씨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서 만취한 상태로 치매에 걸린 80대 할머니 A씨를 따라가 마구잡이로 폭행을 가했다.

김모씨는 심한 폭행을 당해 완전히 정신을 잃은 A씨를 보고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A씨의 하의를 벗긴 후 중요 부위에 물체를 집어넣는 끔찍한 짓을 자행한 것이다.

김모씨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한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잔인하게 유린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검찰 관계자는 가해자의 범행에 ‘입을 다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12년 경기도의 한 요양원서 40대 남성 사회복지사가 일으킨 성폭행 사건도 비슷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당시 사회복지사 김모씨는 약에 취해 움직이기 힘든 상태에 있던 61세의 여성 입소자 B씨를 상대로 2012년 7월부터 8개월 넘게 상습적으로 주1~2회씩 범행을 저질렀다. B씨는 뇌수술을 받아 거동도 불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가족도 없이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생활했던 터라 사건이 알려지면 요양원서 쫓겨날까 봐 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는 이런 B씨의 상황을 악용,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이후에도 “서로 좋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두 번째 표적 이유 = 여기서 여성 노인 상대 성범죄의 또 다른 특징이 드러난다. 혼자 살고 있거나 보호자가 없는 여성 노인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피해자의 집에서 범행이 이뤄질 경우 목격자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사건이 알려지더라도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가해자 입장에선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한 존재에게 보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범죄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위험에 무방비 노출
신고 못하고 속앓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언론에 보도된 여성 노인성폭력 사건 39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 중 27건이 피해자가 혼자 살고 있는 집에서 발생했다.

2012년 8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선 78세 할머니 C씨가 옷이 벗겨진 채로 숨진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

경찰수사 결과 가해자 노모씨는 귀화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30대 남성으로, 휴대전화 관련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C씨의 집 현관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 침입,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노씨는 2013년 1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C씨는 20년 넘게 혼자 살면서 폐지를 모아 생활비를 마련했던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앞서 같은 해 1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만취 상태의 30대 남성이 혼자 사는 70대 할머니 D씨의 집에 침입, 성폭행을 하려다 저항하자 주먹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D씨는 살해당한 다음날 독거노인 돌보미에 의해 발견됐다.


▲세 번째 표적 이유 = 보통 사람들이 여성 노인을 보면 대부분 엄마, 아내, 할머니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노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관계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 노인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 무성적 존재라는 시각이 발생한다. ‘세상에는 여성, 남성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이 같은 시각을 방증한다.

여성 노인을 바라보는 보편적 통념은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아동이나 청소년은 평소와 다른 언행, 상담 등에서 피해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만 여성 노인은 상대적으로 그런 일이 적은 편이다.

자기방어 약해
거의 신고 꺼려

한국여성의전화 자료집에 따르면 여성 노인들은 성범죄 피해를 입는 경우, 딸을 통해 대리상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 2012년 7월 성폭행 피해를 입은 피해자 딸의 대리상담 사례를 보면 “엄마가 사회복지사에게 강간을 당했다. 나는 고소하고 싶은데 엄마는 동네 소문나는 것도 걱정되고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하신다”는 내용이 있다.

2012년 3월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보면 경남 거창서 62세 K씨가 2010년 집에 침입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가해자는 다음날에도 또 K씨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워서라도 신고를 못할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서재인 쉼터소장은 “여성 노인들은 정조를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이며 여성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 여겨졌던 시대에 살았다”며 “이런 이들에게 성폭력은 극도의 수치심과 공포를 준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피해에 집중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동네에 소문이 나고, 자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드러내기를 주저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여성 노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환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성 노인에 대한 성범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해도 끙끙
소문날라 쉬쉬
 

2012년 당시 자료집을 준비했던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은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여성 노인 성폭력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 애를 먹었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속도의 고령화사회(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로 향하고 있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여성 노인 성폭력 예방을 위한 대안 마련과 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인 성폭행 문제’ 2012년 평택 피해자 자살사건 전말
가해자 활보에 극단적 선택

2012년 10월, 국내 한 병원서 치료를 받던 도중 30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60대 여성이 집에서 투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A씨는 “한 여성의 인격과 미래를 파괴한 가정파괴범이 이에 대한 죗값을 받아야 함에도 법 절차는 제가 기댈 곳이 없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악몽이 시작된 건 지난 8월이었다. 피해자는 8월10일 오른쪽 다리 하지정맥 수술을 받기 위해 B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다 12일 압박붕대가 풀려 처치를 받기 위해 갔던 2층 석고처치실에서 간호조무사인 C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A씨는 처치 도중 자꾸 여성의 중요 부위를 만지는 B씨에게 그만하라고 화를 냈지만 B씨는 A씨의 입을 강제로 막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틀니 하나가 부러지고 중요부위에 열상, 타박상 등 상해를 입었다. 사건 당시 A씨는 좌측 손은 장애 4급, 우측 손에는 링거 주사를 맞고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하지정맥 수술 때문에 저항이 어려운 상태였다. A씨는 성폭행 피해를 인지하고 가족들에게 얘기했고, A씨의 남편은 가해자 B씨에게 자인서를 쓰도록 했다. 자인서 하단 부분에는 (자인서를 쓴 것이) 강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과 함께 B씨가 친필 서명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해자의 태도가 돌변했다. 자인서를 강제로 썼다고 번복하고 피해자가 자신을 유혹했다는 식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을 분석한 평택성폭력상담소 김지숙 소장은 병원 측의 태도, 경찰수사 과정, 검찰수사 과정, 법원 등에서 여성 노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여성 노인 성폭력과 관련해 내놓은 자료집에 따르면 평택 사건에서는 담당 검사가 총 4번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현장 검증이 두 차례 이뤄졌다고 한다.

사건 가해자가 범행을 하지 않은 것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A씨는 극도의 수치심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법원이 가해자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하자 A씨는 큰 불안감을 느꼈고, 이는 자살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있다.

김 소장은 “노인과 성인여성 피해자에 대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의료기관 내 성폭력 발생 시 병원에 대한 제재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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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