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3룡’ 건설사의 비밀

“대기업 비켜!” 거침없는 질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최근 건설업계서 파죽지세인 건설사 3인방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때 잘 나갔던 건설사를 M&A(인수합병)하며 사세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묘하게 비슷한 구석들이 있다. <일요시사>는 건설업계 3인방의 공통점을 짚어봤다.

국내 건설업의 불황으로 M&A시장에 건설사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매물 중에는 한때 잘나갔던 건설사들도 눈에 띈다. 반면 매물로 나온 건설사들을 족족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건설사 3인방이 있다. 호반건설, SM그룹, 세운건설이 바로 그 기업들. 3인방의 행보를 보며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마치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것 같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호남 기반
자수성가 회장

호반건설(김상열 회장)의 4대 건설 법인의 외연은 3년 만에 2배가 됐다. 지난해 호반건설, 호반건설주택, 호반건설산업, 호반베르디움 등 4대 건설법인의 각 연결기준 매출액 합계는 3조908억원에 달했다. 작년 매출은 1조2195억원으로 호반건설 1조1593억원을 뛰어넘었다. 영업이익을 살피면 4개 법인은 작년 5275억원을 거뒀다.

SM그룹(우오현 회장)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우방, 우방산업, 우방건설산업, 우방건설의 매출액은 6092억원으로 전년 4617억원 대비 무려 30.95% 증가했다. SM그룹의 지난해 매출 2조4500억원, 영업이익 1900억원, 당기순이익 1600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SM그룹은 법정관리 중인 경남기업에 M&A 전에 뛰어 들었다. 경남기업을 품에 안을 경우 중견 건설사로 발돋움할 교두보가 마련된다.

세운건설(봉명철 회장)은 위에 있는 2인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아직 미약하지만, M&A 시장서의 행보는 가히 독보적이다. 세운건설이 인수한 금광기업과 남광토건의 지난해 매출액은 260억원으로 전년도 156억보다 100억가량 증가했다. 세운건설은 극동건설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면서 중견 건설사 3곳을 거느린 종합건설사로 자리매김했다.


3인방은 하나같이 호남을 모태로 한 무명기업이었으며, 자수성가형 회장들이 이끌고 있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1961년생 전남 보성 출신이다. 그는 조선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중소건설사서 일하다가 호반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의 첫 사업은 광주 북구 삼각동의 호반맨션아파트 149가구였다. 변두리지역이라 수요가 많지 않았으나 아파트 완공 직전 살레시오고와 전남공고 등 시내 고등학교들이 주변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덕분에 호반이 세운 아파트는 완판됐다.
 

김 회장은 호반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금융업을 시작했다. 지금 호반건설은 호반이 설립한 호반건설산업이 모체다. 호반건설산업은 현대파이낸스라는 이름으로 1996년 설립됐다. 김 회장은 이듬해 현대파이낸스의 회사이름을 현대여신금융으로 변경하고 할부금융 사업을 펼쳐나갔다. 그러던 중에 IMF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IMF사태는 김 회장에게 기회였다.

현대여신금융은 1999년 신화개발주식회사로 회사이름을 변경하고 호반의 건설사업부문을 인수했다. 그리고 2000년 이름을 호반건설산업으로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건설사업 확대에 나섰다. 김 회장은 IMF사태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여러 곳에 땅을 사 ‘호반리젠시빌’이라는 이름으로 주택분양사업을 펼쳤다. 호반건설의 기반은 광주였지만 이때부터 울산, 대구, 천안 등 전국적으로 사세를 확장해갔다.

중견 3인방 호반건설·SM그룹·세운건설
‘죽어라 죽어라’ 건설 불황에도 파죽지세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1953년 전남 고흥 출신이다. 그는 광주상고와 광주대 건축공학과, 조선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1988년 삼라건설을 설립하고 광주와 전남 일대 아파트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삼라건설은 승승장구했다. 90년대 광주에서는 아파트 붐이 크게 일어나 삼라건설이 분양한 아파트는 불티나게 팔렸다. 이 때문에 분양만 하면 팔린다는 말까지 나와 SM건설은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0년대 중반 외환위기가 닥쳤지만 위험을 대비해 둔 덕분에 2000년대에는 수도권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당시 경영위기에 처한 건설사들이 보유했던 수도권 택지들을 헐값에 내놨는데 삼라건설은 이 땅을 하나둘 인수했다. 이를 기반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인천, 용인, 구리 등 수도권은 물론 서울시에도 삼라건설의 아파트를 선보일 수 있었다.
 

봉명철 세운건설 회장은 1961년 전남 화순 출신이다. 봉 회장은 1995년 전남 화순에 세운건설을 설립했다. 현재도 화순에 본사를 두고 있다. 주요 업종은 도로건설업과 지역 토목공사 등을 맡고 있다. 세운건설은 아직까지도 건설업계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세운건설이 세간에 알려진 건 2012년 2월 자신보다 10배 이상 몸집이 큰 금광기업을 집어삼키면서부터다.

3인방이 M&A를 통해 전국구 건설사로 발돋움하고 있다. 몸집을 불리려는 배경은 종합건설사로써 위상을 갖추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호반건설은 그동안 꾸준히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최근 울트라건설 인수를 위한 본계약까지 체결했으며 현재 인수가격을 놓고 조정 중이다. 울트라건설은 1965년 설립돼 토목, 관급 주택건설 도급사업이 주력인 중견건설업체로 2014년 연간 매출의 약 82%를 관급공사로 달성했다.

공격적 M&A
사세 급성장

업계에선 호반건설이 향후 굵직한 건설업체 인수합병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울트라건설 인수에 적극적인 것은 사업 확장을 위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또 최근 강점을 보이고 있는 주택사업이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호반건설이 아파트 건설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 때문에 토목 등 사업다각화를 이루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며 “최근 울트라건설을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향후 굵직한 건설업체 인수로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TOP10 진입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반건설은 이 외에도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중견 건설사 인수전에 뛰어들어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해 초부터 쌍용건설, 금호산업, 동부건설 등 건설사는 물론 쉐라톤 인천호텔(대우건설)과 파르나스호텔(GS건설) 등의 인수 후보로도 끊임없이 거론됐다. 특히 금호산업 매각 전에는 단독으로 나서 6000억원이 넘는 응찰가를 써내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했다.
 

SM그룹은 올해만 3개의 건설사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항만 및 하천 준설 토목공사 분야서 기술력을 보유한 비상장사 태길종합건설을 인수했다. 올 들어 성우종합건설과 동아건설산업에 이어 세 번째 건설사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성우종합건설은 올해 초부터 추진한 공개매각이 무산되면서 회사 청산 위기까지 몰렸지만 SM그룹이 인수자로 나서면서 기사회생하게 됐다. 법정관리 건설사 5~6개를 인수해 하나로 합쳐 대형 건설사로 키우겠다는 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법정관리 건설사들을 줄줄이 인수하면서 SM그룹이 대형 종합건설사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에 한발 다가섰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미 SM그룹은 M&A업계에서는 큰손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주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기업들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계열사를 17개(건설사 및 다른 업종 포함)까지 늘렸다.

세운건설의 M&A 행보는 가히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였다. 세운건설은 2012년 지역 대표 건설사였던 금광기업을 인수하면서 지역사회를 놀라게 했다.


지방 무명서…
전국구 발돋음

세운건설은 당시 시공능력평가액 378억원으로 전국 440위였다. 금광기업은 시공능력평가액이 세운건설의 11배가 넘는 4310억원(55위)이었다. 법정관리 중이긴 했지만 당시 시공능력평가액 전남 1위 대표건설사였던 금광기업을 세운건설이 집어삼켰다.

금광기업은 세운건설로 인수된 직후 법정관리서 벗어나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들어갔다. 세운건설은 최근 금광기업의 옛 주인인 송원그룹의 소송도 뿌리치고 소유권을 확고히 했다.

인수합병은 시공능력평가액 59위인 남광토건으로 이어졌다. 토목공사에 주력했던 남광토건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나 장기간 정상화되지 못하면서 2014년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세운건설은 지난해 금광기업·오일랜드 등과 컨소시엄을 꾸려 유상증자와 출자전환을 거쳐 남광토건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세운건설의 M&A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공능력평가액 44위인 극동건설로 계속됐다. 극동건설은 웅진그룹 산하에 있던 중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건설사.세운건설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극동건설과 투자계약을 체결하며 인수합병을 추진해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 결정도 받아냈다.

법원이 회생계획안을 인가하면서 세운건설은 극동건설까지 품에 안았다. 세운건설이 금광기업·남광토건·극동건설까지 모두 인수하면 시공능력평가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30위권의 이내의 대형건설사로 올라섰다.


이들 3인방의 광폭행보에 업계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자칫 잘못했다가는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서 무리한 인수합병은 자칫 건실했던 모기업을 부실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이었다. 2006년 대우건설을 사들였다가 그룹을 통째로 위기에 빠뜨렸다. 이뿐만 아니라 굴지의 조선사들을 거침없이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던 STX그룹의 침몰 역시 대표적인 승자의 저주 사례다. 이들 3인방이 이런 선례에서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너무 빠른 거 아냐?”
오버페이스 우려도

호반건설의 곳간이 넘친다고 하지만 호황기를 지난 주택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사업 다각화를 위해 무리하게 인수전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여전히 주택시장의 비중이 높은 호반에게 이런 M&A가 부담될 수 있다는 시각이 다분하다.

SM그룹의 무분별한 M&A에 대해서도 걱정이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그룹의 기존 사업과 큰 연관성이 없는 기업들을 인수하고 있는 점은 위험요소로 꼽힌다. 앞서 2011년 SM그룹은 유압기 부품 계열회사인 태주를 인수했지만, 그룹 관리 아래 법정관리에 돌입하기도 했다.

법정관리가 진행돼 어느 정도 부실이 정리된 매물들만 인수했던 만큼 실제 기업회생 능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SM그룹은 계열사 간의 연결고리도 상당히 약한 구조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세운건설의 행보 역시 거침없고 성공적인 듯 보이지만, 일부의 우려섞인 눈빛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먼저 세운건설이 피인수기업의 경영 안정화보다는 추가 M&A에만 몰두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실제로 금광기업은 인수 첫해인 2012년에 전년보다 매출이 22.52% 줄었다. 그 후 지난해까지 역성장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012년부터 3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실적은 악화되고 있는데 M&A에 투입돼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했다. 금광기업은 남광토건에 100억원, 극동건설에 107억원을 투자했다.

인수 초기에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 점도 우려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세운건설은 남광토건을 인수한 뒤 광주지점 설립을 추진했다. 그리고 영업 등 일부 부서만 제외하고 본사 인력들을 광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남광토건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광폭 행보에
불안한 시선

극동건설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극동건설 노조는 세운건설이 인수하면 남광토건처럼 될 것을 우려, M&A 반대를 표명했다. 그리고 올해 초 서울시 서초구 금광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다. 무서운 속도로 영토를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불안한 시선을 떨쳐 내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내 건설경기 전망 “더 안 좋아진다” 

국내 건설경기를 이끌던 주택산업의 위축으로 2018년에는 국내 건설업계가 수주불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상호)은 19일 배포한 ‘국내 건설경기 하락 가능성 진단’보고서에서 “2016년 국내 건설수주는 123조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0% 이상 크게 하락할 전망”이라며 “2017년 이후에도 향후 2∼3년 간 감소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건산연은 작년 건설수주 호조를 이끌었던 민간주택 부문이 크게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2018년 수주불황 경고
20%↓ 주택산업 위축?

올해 부문별 국내 수주 전망은 공공 41조 8000억원, 민간 81조2000억원으로 전망됐다. 이전 각각 전년대비 6.5%와 28.3% 줄어든 것으로 민간 부문 중 주택 수주예상치가 전년대비 29% 줄어든 48조 1000억원으로 나온 영향이 컸다.

문제는 주택수주 전망이 갈수록 어둡다는 점이다. 건산연은 신규 주택 공급은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늘었고 작년 신규주택 분양이 역대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공급과잉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방 주택입주물량은 2014년 이후 4년 연속 역대 최고수준인 점도 부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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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