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제 박세리의 19년 골프인생

굿바이 세리! 살아 있는 전설로 남다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눈물 속에 마지막 US여자오픈을 마감했다.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의 드라마 같은 우승을 비롯해 19년간의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메이저대회 5승을 포함해 25승을 거뒀고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자신을 스타로 키워준 이 대회를 끝으로 미국에서의 마지막 무대를 US여자오픈으로 끝내는 순간 박세리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 속에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US여자오픈 연장전 극적 역전 드라마
메이저 5승 등 총 25승 ‘명예의 전당’

지난달 9일 US여자오픈 2라운드에서 8오버파 80타를 쳐 이틀 합계 9오버파 153타로 컷 탈락한 박세리는 마지막 홀 그린을 벗어나면서 “지금 내 가슴 속에 너무 많은 감정이 솟구친다. 괜찮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며 눈물을 흘렸다.

필드를 떠나다

혼자가 아니었다. 박세리의 마지막 US 여자오픈을 함께한 최나연(29·SK텔레콤)도 눈물을 보였다. “박세리 선배가 우는 것을 본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최나연은 “그가 US여자오픈을 우승할 때 난 아빠와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골프를 시작한 계기였고, 많은 한국 후배들에게 꿈을 주었고 문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박세리가 라운드를 끝내는 순간, 미국골프협회(USGA) 직원들이 도열해 경의를 표했다. 호주 여자골프의 간판스타 카리 웹(43)도 그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포옹을 나눴다. 웹은 박세리가 전성기 시절 함께한 라이벌이다.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치열한 3파전을 벌이던 때도 있었다. 박세리는 “웹은 한때 나의 우상이기도 했고, 좋은 친구였다. 그의 축하를 받고 떠나게 돼 정말 의미가 크다”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개척자로, 살아 있는 전설로 골프선수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을 이룬 박세리. 하지만 이날 박세리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다”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박세리는 “사람들은 내가 젊은 나이에 굉장한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많은 돈을 벌었고, 진정으로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고 털어놨다. 이어 박세리는 “늘 골프만 생각했고, 18홀을 돌고 나면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었지만,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외로움을 느꼈다”며 “조금은 재미있는 일이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 시간이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성공 뒤의 외로움과 허탈함, 그리고 힘겨움을 느꼈기 때문일까. 박세리는 후배들에게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매 경기 110%의 힘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그것을 즐기고 있느냐는 것”이라며 “그것을 즐기고 있을 때 더 좋은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라고 조언했다.

박세리에게는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정확히 18년 전인 1998 년 7월7일. 박세리는 ‘맨발의 투혼’을 펼치며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영광의 지난 날

당시 해저드에서 샷을 하기 위해 양말을 벗은 박세리의 하얀 발과 검게 탄 다리는 그의 노력을 한눈에 보여줬고 극적인 우승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실의에 빠졌던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안겨줬다. 그리고 이때 ‘세리 키즈’라고 불리는 골프 꿈나무들이 탄생했다.


박세리도 그날의 감동이 떠오르는 듯 “내 우승 이후 한국에서는 그저 특별한 스포츠로 인식됐던 골프가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후배들이 LPGA투어에 진출했다”고 회상했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LPGA투어에서 25승을 거둔 박세리는 한국 선수 중 LPGA투어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게 됐고 2007년에는 한국 선수로서는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 은 박세리를 ‘한국의 아널드 파머’라고 평가했다. <ESPN>은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박세리의 선수 경력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글로벌한 영향력을 미쳐왔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같이 비유하며 ‘어쩌면 그런 호칭도 박세리에게 충분치 않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 칼럼은 현지 언론에 작별 인사를 전한 박세리의 선수 생활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ESPN>은 “새로운 선수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은퇴도 하지만 그 중 소수만이 자신의 종목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다”며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예정인 박세리는 그 소수에 들어가는 선수”라고 규정했다.

‘K골프’세계에 알린 개척자
“성공?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이 매체는 “1998년 20살이던 박세리가 LPGA투어 신인으로 등장해서 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난 뒤 한국에서 골프는 그 이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달라진 위상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후 561개 LPGA대회에서 한국 출생 선수들이 149 개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들도 ‘최강 K골프 선구자’ 박세리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했다. 미국 <머큐리뉴스>는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당시 20세의 나이에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뒤 이후 십수년 동안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을 이끌고 LPGA 무대를 누볐다”고 상세하게 전했다. 또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당시만 해도 LPGA투어에 한국 선수는 그가 유일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골프 세계랭킹 상위 125위 이내 한국 선수는 50명이나 된다. 상위 25위 이내에도 11명의 한국 선수가 있다. 디펜딩 챔피언 전인지(22·하이트진로)를 포함해 최근 11차례의 US여자오픈 중 7번을 한국 선수가 우승했을 정도로 한국 여자골프는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다.

박세리는 “은퇴를 하고 미래 골프선수들에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도울 것”이라며 “한 개인으로서 선수로서 어떻게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나연은 “그녀는 전설이자 한국의 개척자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은 항상 TV에 나오는 그녀를 응원하며 자랐다”며 “모든 어린 선수들은 진정으로 그녀를 존경한다. 그녀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도 우리에게는 영광이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조언을 원하는 모든 골프 선수들에게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최선의 경기를 하라. 그리고 골프 코스에서 떨어져 조금은 더 편안함을 얻어라. 다른 뭔가를 위해 좀 더 시간을 갖고 좀 더 주의를 기울여라.”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역시 “만일 한국과 아시아의 TV 중계권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LPGA투어는 4~5년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아시아 시장이 커진 이유 가운데 박세리가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평가했다.


1998년 박세리와 함께 투어 신인이었다가 지금인 LPGA투어 임원으로 일하는 헤더 델리 도노프리오는 “박세리는 한국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며 “태국, 일본, 중국 선수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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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