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저축은행-건설사 삼각 커넥션 의혹

눈뜨고 날린 금싸라기 땅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용인시에서 이해하기 힘든 토지 사기 논란이 불거졌다. 건설사는 물론 금융사, 지자체까지 연루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지난 2014년 용인시는 신봉2지구 도시개발사업 추진을 결정했다. 수지구 신봉동 402-1번지 일원에 약 42만㎡ 규모로 주거지 및 도시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게 주된 골자. 신봉2지구 도시개발이 완료되면 인근 지역은 7000세대를 아우르는 대단위 계획주거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다만 산155번지(1만1714㎡)에서 불거진 의혹은 쉽사리 지나치기 힘든 사안이다.

멀쩡한 땅에
토사 불법투기

신봉2지구의 핵심 위치에 자리한 산155번지는 4년 전까지 양성옥씨와 그의 부인인 김경미씨의 소유지였다. 하지만 신봉2지구 개발사업이 수립되기 직전인 2012년에 양씨는 산155번지의 소유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현재 이 땅의 주인은 모아저축은행. 그러나 양씨 부부가 주목하는 건 산155번지를 소유한 모아저축은행이 아닌 일레븐건설이다.

주택건설 및 분양 시행업체인 일레븐건설은 용인시를 거점으로 그간 대형 건설사들과 시공 계약을 맺고 분양사업을 진행해왔다. 건설업계서는 손꼽히는 ‘디벨로퍼(부동산 개발 및 시행업체)’로 손꼽힌다.

일레븐건설과 양씨 부부가 엮인 건 지난 2004년 12월부터였다. 당시 일레븐건설은 인근 건설현장서 나온 토사를 산155번지에 투기하는 기막힌 행태를 벌였다.


덤프트럭을 통해 옮겨진 토사는 순식간에 산155번지 일대 약 9000㎡의 면적에 7∼8미터 높이의 야산을 만들었다. 양씨 부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된 2005년 9월에는 준공하면서 쌓았던 축대, 길, 철대문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일레븐건설이 연루됐다는 대략적인 정황은 2007년이 돼서야 겨우 드러났지만 현재까지도 일레븐건설은 당시 상황에 대해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일레븐건설 관계자는 “시일이 많이 흘러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상태”라며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왜 일레븐건설은 납득하기 힘든 일을 벌인 걸까.

일단 산155번지의 입지적 특성을 감안해볼 필요가 있다. 일레븐건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신봉2지구 일대의 토지를 다량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신봉지구단위계획도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다만 신봉2지구의 핵심이 되는 산155번지를 손에 넣는 건 실패했다. 향후 시행될 개발사업을 감안하면 신봉2지구 한 가운데 위치한 산155번지는 반드시 필요한 토지였다.

엇갈리는 진술
진짜 내막은?

흥미로운 점은 용인시가 피해자(양씨 부부)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가해자(일레븐건설)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사실이다. 용인시가 보여준 행정 처리 과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산155번지 일대에 일레븐건설이 토사를 불법 투기한 사실을 알게 된 양씨 부부는 용인시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용인시는 2008년이 돼서야 용인경찰서에 고발했고 이마저도 보여주기에 불과했다. 심지어 불법 행위자가 일레븐건설이라는 사실은 중간에 누락됐고 용인경찰서는 행위자 불분명을 이유로 고발장을 반송한다.


승복하지 못한 양씨 부부는 일레븐건설을 추가 고발했다. 엉뚱하게도 이번에는 약 9000㎡에 달했던 토사 불법 투기 면적이 2000㎡으로 80% 가량 축소 기재됐고 이 진술을 토대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원상복구돼 투기면적을 알 수 없다”는 진술이 받아들여진 까닭이다. 그러나 현장 취재 결과, 11년이 흐른 지금도 산155번지 일대는 불법 투기된 토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태였다.

국민신문고에 진정도 해봤지만 용인시는 “준공처리된 산지전용허가지가 붕괴돼 토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원”이라며 국민신문고에 허위 사실을 보고했다. 이 모든 과정은 김씨가 보유하고 있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해당 내용을 토대로 용인시에 당시 정황을 문의했지만 뚜렷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용인시 산림과 관계자는 “오래 전 일이라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른 민원 처리였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일레븐건설] 남의 땅에 군침
[모아저축은행] 해결사 노릇
[용인시] 피해 호소에 팔짱만

한술 더 떠 용인시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내세워 양씨 부부를 극단으로 내몰기에 이른다. 양씨 부부가 1998년에 산155번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행했던 준공완료를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무효화시키고 나선 것이다.

통상 산지를 대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준공허가가 필수다. 준공허가가 떨어지면 전용허가를 거쳐 지목변경이 가능하다. 양씨 부부는 1998년 3월과 6월에 자신의 소유한 산155번지(1/4 지분)과 368-2번지를 합쳐 준공을 완료한 후 건축허가명의까지 취득했다.

이는 산지였던 산155번지와 잡종지였던 368-2번지가 상업용도로 개발 가능토록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산155번지의 나머지 구역은 당시 이 땅의 소유주였던 권씨를 통해 준공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어쩐 영문인지 용인시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무시한 채 2008년에 해당 토지에 대한 산림형질변경허가를 취소했다. 사실상 대지였던 땅을 산지로 되돌려놓은 결정이었다. 용인시가 내세운 취소의 사유는 적지복구예치비(인허가시 내는 세금) 미납. 1997년에 내야 했던 2668만8020원의 적지복구예치비를 2008년까지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 결과 양씨 부부는 적지복구예치비를 냈다는 영수증을 가지고 있었다. 영수증에는 당시 김씨가 소유한 산155번지 지분의 1/4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지고 있던 권씨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 권씨는 준공 완료 후 예치했던 2668만8020원을 절차에 따라 1998년 3월에 환급받았다. 산155번지 일부와 368-2번지에 대해서는 김씨가 서울보증보험에 해당 금액을 납부하고 준공을 완료했다.

만약 용인시의 주장대로라면 산림형질변경허가 과정에서 적지복구예치금을 외상한 상태로 건축허가를 받았다는 엉뚱한 공식이 성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인시는 10년간 양씨 부부에게 별다른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았다.

더욱이 용인시는 산림형질변경허가 취소 결정을 4년이 지나도록 양씨 부부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양씨 부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산155번지의 소유권이 모아저축은행으로 넘어간 2013년 무렵이었다.

미심쩍은 흔적
커지는 의혹


토사 불법 투기건 및 산림형질변경허가 취소는 결과적으로 양씨 부부의 재산권 방어에 중차대한 결함으로 작용했다. 추후 산155번지를 잃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모아저축은행은 국면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난 2001년 양씨 부부는 산155번지의 소유권을 경매 낙찰을 통해 취득한 전례가 있다. 이 과정에서 양씨 부부는 수십억원대 금전적 손해를 입었는데 이 무렵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 모아저축은행이다.

김씨는 당시에 모아저축은행 회장과 직접 대면했고 산155번지를 담보로 감정가는 200억원, 대출은 120억원까지 가능하다는 대답을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50억원(2006년 1월)과 1년 후 10억원까지 총합 6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6년 간 매월 6500만원씩 도합 50억원의 이자를 모아저축은행에 납부했다.

그러나 2011년 말 양씨 부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보유 현금 고갈로 6개월분의 이자를 연체하게 된 것이다. 다급했던 양씨 부부는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 237번지 토지를 24억원에 매각했다는 매매계약서를 모아저축은행 실무자에게 보여주며 매매대금을 받자마자 연체이자를 완납하겠다고 거듭 표명했다. 모아저축은행의 임원이자 해당 업무 실무자였던 박모씨 역시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씨 부부에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한 지 3일 후 모아저축은행이 돌연 산155번지와 신갈동 237번지 등을 공동담보를 잡아 경매에 넘긴 것이다. 이로써 사전 계약했던 신갈동 237번지의 매매계약이 파기됐고 채무 변제의 길도 막혀버렸다.

공교롭게도 모아저축은행이 경매에 넘긴 산155번지의 낙찰자는 모아저축은행 자신이었다. 이전까지 대지로 인정받던 산155번지는 산지로 평가돼 시가의 1/6에 불과한 61억원으로 감정이 이뤄졌다. 이후 김씨에 대한 대출채권액과 맞아떨어지는 63억원에 산155번지에 단독 입찰한 모아저축은행은 2012년 6월에 유찰 없이 1차 경매기일에 낙찰받았다. 결과적으로 김씨는 63억원에 불과했던 땅에 6년에 걸쳐 50억원의 이자만 쏟아 부은 채 소유권을 상실한 셈이다.


김씨는 “대지로 감정 받아 법원에서 경매 낙찰받았던 산155번지가 다시 산지로 둔갑할 때까지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다”며 “이 땅이 대지가 아닌 산지로 60억원대 가치였다면 50억원이나 6년간 이자까지 내면서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겠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지가 산지로? 이상한 토지변경
대출금 압박하더니 직접 낙찰

현재 모아저축은행은 낙찰받은 산155번지를 4년째 되팔지 않고 있다. 산155번지를 처분하고자 수차례에 걸쳐 매각공고를 냈지만 무위에 그쳤다는 게 모아저축은행의 설명이다. 그사이 매각가격은 60억원에서 80억원으로 30% 이상 올랐다. 그만큼 새 주인 찾기는 더 힘들어졌다.

공교롭게도 현장 확인 결과 산155번지 일대에는 유치권 설정을 암시하는 듯한 10여 곳의 가건물이 곳곳에 방치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산155번지의 전 소유주였던 양씨 부부가 준공비용 보전을 이유로 설치한 가건물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모아저축은행이 시기를 봐서 산155번지를 일레븐건설에 넘기려 한다고 김씨가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0억 땅에
이자만 50억

그러나 모아저축은행은 양씨 부부의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당시 양씨 부부는 대출금에 대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했고 은행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경매를 밟았다는 게 주된 요지다. 산155번지가 산지인 만큼 해당 지목에 다른 감정을 거쳤고 양씨 부부가 말하는 무언의 의혹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이다.

모아저축은행 여신처리팀 관계자는 “당시 양씨 부부는 모아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고서도 이자를 6개월간 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산155번지의 소유권을 잃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며 “모아저축은행은 분명히 적법한 절차를 거쳐 모든 과정을 완료했다. 벌써 4년이 넘은 이 일을 지금에 와서 문제시 삼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다”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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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