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궁지 몰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성공가도 스톱 ‘독종의 몰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검찰에서 손꼽히는 특별수사통으로 불리던 우병우 민정수석이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 안팎에서 우 수석을 거론할 때 ‘실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어서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 수석의 현재까지의 자취를 짚어봤다.

검사 시절 ‘독종’으로 불린 우병우 수석은 ‘엄친아’ 스타일의 수재였다. 1967년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1984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서 전국석차 53위의 성적을 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들어가 3학년인 1987년 만 20세에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가 됐다. ‘소년등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리틀 김기춘’
대통령 신임

우 수석은 1990년 제 19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검찰에 들어가 검사의 길을 걸었다. 검사 생활 내내 선두권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를 뚝심있게 밀어붙이지만 성격이 깐깐하다는 말도 들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우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4부와 6부를 거쳐 대구지검 경주지청, 창원지검 밀양지청, 제주지검 등에서 일했다.

평검사 시절 우 수석의 전적은 화려하다. 그는 조폭 서방파 행동대장과 대전진술파 두목은 물론 이대병원 수련의 임용과정서 돈을 받고 혜택을 준 피부과장을 구속했다.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과 세균폐수를 방출한 중대부속병원 등 굵직한 병원도 적발했다. 1992년엔 대구지검 경주지청 검사로 있으면서 경주대 설립자 민자당 전 김일윤 의원을 학교공금 53억원 횡령으로 기소해 주목받았다.

지난 1999년 법무부 국제법무과를 거처 2001년 서울 동부지청 형사6부에 배치되면서 우 수석은 다시 ‘수사 검사’로 돌아갔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2년까진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의 특별수사관으로 있었다. 당시 우 수석은 송해운·윤대진 검사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활약했다.


이용호 게이트는 권력형 게이트의 전형, 모범답안이라고 불린다. 이 게이트는 지난 2001년 이용호 G&G그룹 전 회장이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해 구속기소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검찰은 이 전 회장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이에 검찰에 대한 의혹이 터져 나왔다.

이로 인해 이 전 회장이 김대중정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가 구속되면서 여당, 검찰, 국정원, 금감원, 국회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여기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도 포함돼 있었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노무현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차정일 특검이 우 수석을 두고 “매우 훌륭한 검사”라는 평가를 한 기록도 있다.

‘엄친아 수재’ 20세 사시 최연소 합격
깐깐·묵묵 평검사 시절…전적은 화려

우 수석은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 들었다. 그는 2002년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 2003년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 시절 우 수석은 민주당 이정일 전 의원을 상대 후보 도청기 설치 의혹으로 긴급체포하는가 하면, 잠실야구장 광고물 수의계약 뇌물수수로 이상국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카드깡을 통한 강원랜드 도박자금 제공과 메인 카지노 진입도로 보강공사 비리혐의를 받던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도 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우 수석은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수사진은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을 하루 앞두고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그들은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켰다. 이 아이디어는 우 수석이 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자 재산 NO.1
재벌사위로 유명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용조세조사2부장 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씨의 공천 청탁 금품수수 사건도 수사했다. 이명박정권이 출범한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김옥희씨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받고 그 해 8월 구속됐다. 이후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1과장이 되면서 ‘박연차 로비’ 사건을 맡게 된다. 여기서 우 수석의 승진 가도는 멈춘다.

박연차 로비는 지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노건평이 뇌물 수수혐의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이어졌다. 대검찰청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을 받았다는 차용증을 확보했다.

이후 2009년 우 수석과 이인규·홍만표가 수사에 투입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그의 부인과 조카사위 등이 박 회장으로부터 총 600만달러(약 68억원)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중앙수사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우 수석은 이 사건의 주임검사로 미리 준비한 200여개의 질문으로 노 전 대통령을 심문했다.

그는 윗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소환 조사 후 20여일 뒤 언론에 유출되던 수사과정과 악의적 보도에 시달리던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의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그 여파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퇴진하기도 했다. 이후 우 수석은 자리를 옮겨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지냈다. 지난 2011년에는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이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거치기도 했다.

당시 김준규 신임 검찰총장과 법무부에서 함께 일하는 등 인연이 있었던 덕분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것이 약점이 되어 두 번의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게 된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수사에 참여한 것 때문에 검사장 승진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2013년 우 수석은 검찰을 떠나게 된다.

우 수석은 고위 공직자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으로도 꼽힌다. 그는 검사 시절부터 ‘재력가 사위’로 알려졌다. 지난해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발탁되며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을 때 신고한 재산은 423억3230만원이었다. 지난 3월에는 393억6754만원으로 집계됐다.

우 수석의 장인은 고 이상달 기흥CC 및 정강중기·건설 회장이다. 이 회장은 4명의 딸을 뒀는데, 이 중 한명이 우 수석과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우 수석이 20대 새내기 검사 시절에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사망했고 그의 재산은 부인과 4명의 딸들이 물려받았다. 그의 부인은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 주식을 2200주(자본금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는 현재 기흥 CC를 운영하고 있는 (주)삼남개발의 모회사로 자산총액은 토지를 포함해 1967억원에 이른다.

우 수석의 재산은 지난해 기준으로 본인과 부인 명의 예금 183억2077만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아파트 등 건물 66억8651만원, 사인간 채권 165억8051만원 등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그의 검사장 탈락은 노 전 대통령 수사보다 ‘너무 많은 재산’이 문제였다는 견해도 있다. 검사가 재산까지 많다면 사회에서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강직했는데…
먹구름 낀 앞날


두 차례 승진에서 떨어지며 검찰을 떠났던 우 수석은 박근혜 정권 2년차인 지난 2014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로 새 출사표를 냈다. 그는 민정수석실의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며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리틀 김기춘'이라고 불린 것도 이 시점부터다.
 

청와대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 수석은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무난하게 마무리하면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높은 신임을 얻는다. 상관인 김영한 전 민정수석을 통하지 않고 김 전 실장에게 직접보고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에 김 전 수석은 사석에서 “재임 7개월 동안 제대로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못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김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 유출자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지난해 1월 ‘항명사태’를 일으키며 사의를 표명한다. 일각에선 우 수석이 김 전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생긴 갈등이 사의의 원인이라는 말도 있다.

민정비서관 시절 이미 우 수석은 민정수석실 파견 인원의 상당수를 교체하는 데 앞장서는 등 실 내의 권한이 컸다는 말도 전해진다. 당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김기춘과 우병우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고 했다.

김 전 수석의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우 수석은 청와대에 들어간 지 8개월 만에 민정수석이 됐다. 노무현정부 시절 전해철 민정수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이 40대에 민정수석에 오르는 기록을 세운 셈이다. 동급의 자리인 법무부장관으로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우 수석과 열 살 정도 차이가 난다. 이 같은 초고속 승진도 흔치 않다.

‘뒤 구린’ 굵직한 사건들
알고 보니 수백억 ‘갑부’


민정수석의 자리는 무겁다. 민정이라는 글자 그대로 민심의 동향, 국민들의 여론을 파악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일을 주업무로 삼는다. 국정의 모든 부분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공직사회 감찰과 기강 확립 등으로 청와대 업무 대부분에 관여하니 정치 등 모든 면에서 민정수석이 연관되지 않은 일이 없는 셈이다. 일도 많고 정보도 많이 얻다보니 민정수석의 자리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나 업무상 실수로 책임지고 불명예 퇴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근혜정권에 들어 민정수석의 자리는 3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우 수석은 검찰 시절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잡히면 과도하게 앞뒤 안가리고 수사를 한다” “너무 직선적인 성격으로 배려심이 없다”는 평가를 통해 타협이 없는 강직함과 배타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 평검사 시절부터 그는 외압과 로비에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일각에선 그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 2부의 부부장검사를 지내고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장에 있던 지난 2003∼2004년을 최고로 꼽는다. 서울중앙지검이 국내 모 대기업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이 기업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찾아 로비할 사람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유독 우 수석만 수사 중 기업 측 사람을 만나주지 않았다.

대구지검에서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광고 비리 사건을 꼽는다. 지역에서 상당한 힘을 자랑하던 한나라당 전 강신성일 의원과 열린우리당 배기선 전 의원을 수사하면서 쏟아진 온갖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결국 두 사람을 소환조사했다. 이로 인해 대구지검에서는 특수부의 전성기가 열렸다는 평가도 받았다.

‘최연소 사시 합격자’ ‘40대 민정수석’ 등 화려하고 성공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우 수석은 최근 화제의 주역이 됐다. 게임회사 넥슨에 부탁해 처가의 부동산을 매입시켰는지 모른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의혹
무너질 위기

의혹의 핵심은 장인이 물려준 강남역 부근 1300억원대 부동산을 상속세 때문에 매물로 내놓았으나 매입자가 나오지 않아 세금 부담이 가중되던 와중 이를 넥슨이 매입해줬다는 것. 이 때 넥슨은 당시 공시지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했다고 한다. 평소 강직하고 성실한 이미지로 청와대의 젊은 실세가 된 우 수석이지만 이번 일로 그의 승승장구에 먹구름이 꼈다.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정수석실 굴욕사

박근혜정권 민정수석실은 ‘수난’을 겪고 있다. 3년간 3명의 민정수석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현 정권 초기 곽상도 민정수석은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 등 연이은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2013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뒤를 이어 홍경식 전 민정수석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의 낙마에 책임을 지고 임명 10개월 만에 교체됐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전임자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임명 7개월 만에 퇴진했다.

김 전 수석은 전임자들과 다르게 청와대에 ‘항명사태’를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으로 청와대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표를 냈다.

김 전 수석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문건 유출 사건 이후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출석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주장하며 출석 지시를 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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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