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원내대표 파워게임

우·정·박, 그들에 미래 권력 달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모든 당의 안방마님이 결정됐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에 정의당까지 원내대표를 결정, 개원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이번 원내대표의 중요성은 앞선 그것과 비교되지 않는다. 향후 법안 통과는 물론 당대표 선출과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일요시사>는 당선된 원내대표들의 성향을 기반으로 앞으로 있을 굵직한 정치적 이벤트들을 예측해봤다.

제20대 국회 개원까지는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각 당은 원내대표를 결정하고 협상의 선봉장으로 세웠다. 이번 원내대표의 중요성은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당에서 생각하는 핵심 법안을 회기 내에 통과시키려면 이들의 역할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 주고
하나 받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4일, 당선자 총회에 참석해 원내대표의 중요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원내대표가)초기 원내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대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 선출되는 원내대표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 지금부터 대선까지 우리 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경제 관련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국회 운영이 돼야 한다. 실질적으로 대안 정당, 경제 정당으로서 경제 운영틀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 (그렇게) 남은 대선까지 능력을 보여주는 게 수권을 위한, 그리고 국민과의 약속 이행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원내 3당 중 가장 먼저 결정된 인물은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다. 국민의당은 지난달 27일 당선인 워크숍에서 박 의원을 원내대표에 앉혔다. 방식은 추대였고 만장일치였다. 박 원내대표는 현장에서 바로 이루어진 당선자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한민국과 국민만 생각하고 그 길로 가자, 그리고 때로는 더민주와, 때로는 새누리당과 협력하면서도 견제해 국민들로부터 생산적이고 일하는 국회, 그리고 민생을 생각하는 국회로 거듭날 것이다.”


정진석, 나경원, 유기준 3파전으로 진행된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은 정진석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결론적으로 계파 중립을 내세웠던 정진석이 당선됨으로써 당내 갈등 해소에 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제2당으로 밀려난 새누리당 입장에서 원내대표 경선은 그만큼 중요했다. 정 원내대표가 최초의 원외 당선인이 된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총 119표 중 정진석 69표, 나경원 43표, 유기준 7표였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박계의 도움을 받은 정 원내대표는 당선 인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18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이 시간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그런데 18개월 후에 무엇을 이뤄야 될지는 우리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새누리당의 마무리투수 겸 선발투수 역할을 하겠다. 박근혜정부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정권재창출의 선발투수가 되겠다.”

더민주는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상호 의원이 총 120표 중 63표를 얻어 당선됐다. 우 원내대표 또한 정견 발표 시간 때 대선에 대한 언급을 잊지 않았다. 그는 “계파싸움에 몰입하는 정당은 아무리 좋은 법안을 내도 국민이 알아주지 않는다”며 “집권을 위해서는 당내 화합을 이룬 다음에 민생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어야 한다. 정기국회에서 민생현안에 대해 집요하게 싸우는 것이 수권정당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즉 3당 원내대표의 등장은 대선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여소야대 정국은 3명의 원내대표들의 행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반이 넘는 절대 당이 없는 상태에서 각 원내대표는 서로에 대한 탐색전부터 시작했다. 이는 곧 국민의당에 대한 러브콜로 이어졌다. 더민주와 새누리당의 우·정 원내대표가 당선 첫 행보로 박 원내대표와의 대화를 선택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먼저 정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당선 인사를 간 자리에서 정 원내대표는 앞서 만난 정의화 국회의장,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와는 '악수'로 인사를 나눈 반면, 박 원내대표와는 '포옹'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이날 정 원내대표는 자신이 국민의당을 상징하는 ‘녹색 넥타이’를 착용했다며 박 원내대표에게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또한 현장에서 정 원내대표는 “앞으로 박 원내대표를 많이 의지해야겠다”고 했다.


우 원내대표 또한 박 원내대표와의 인사로 시작을 알렸다. 당선이 된 직후 가진 첫 통화의 상대가 바로 박 원내대표였다. 단순히 회동 날짜를 잡는 형식적 통화라고 하지만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을 의식한 행보였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3명 모두
쉽지 않다”

두 거대 정당으로부터 동시에 관심을 받게 된 국민의당은 급할 것 없다는 입장이다. 박 원내대표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이 같은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당분간 두 분(우·정 원내대표)의 말씀을 듣겠다. 가급적 발언을 자제하고 관망 모드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최근 국회의장 선출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 논란이 되자 선을 긋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급할 것 없다는 자신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3명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이후에 있을 국회의장 선출은 물론 향후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회의장 선출에서 박 원내대표의 의중에 따라 새누리당 출신이 될지 또는 더민주 출신이 될지 결정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이 의장직과 주요 상임위원장직, 또는 여기에 국회 사무총장직까지 묶어 빅딜에 나설 수 있다고 예상한다. 정국은 이미 국민의당에게 유리하게 작동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약 1년6개월 정도 남은 대선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민의당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쟁점 법안 통과가 결정된다. 이는 곧 정당의 지지율과 직결된다. 정당 지지율은 향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갑론을박이 있는 ‘연정’ 또한 결국은 국민의당이 대선을 염두해 둔 상황에서 나온 하나의 시나리오라는 게 정치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상호·정진석·박지원 궁합 주목
의장 보트 쥔 박, 사무총장과 빅딜?

연정은 대선을 앞두고 두 당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새누리당 또는 더민주 대통령에 국민의당 총리는 이런 메커니즘에 기인한다. 몇몇 정부부처 장관직 인사권을 국민의당이 받는 조건으로 두 정당 중 한 명의 후보를 밀어줄 수 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한 익명의 정치평론가는 “연정이라는 것은 결국 권력을 나눠 갖는다는 점을 전제로 나온 말이다. 정치적 중립을 선언한 국민의당이 주체이자 파트너가 돼 자신의 몫을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라고 정리했다.

대선으로 가기 전 각 당에서는 전당대회라는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이 전대에서 각 당의 원내대표들은 차기 당대표 선출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정가에서는 이들 원내대표와 차기 당대표와의 궁합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은 전대 날짜를 연기해 내년 2월쯤 열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지금의 안철수·천정배 체제는 당분간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변수는 역시 안 대표의 대선 출마 여부다. 만약 그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올해 말로 전대가 앞당겨질 수 있다. 가능성은 높다. 국민의당 당헌 상 대선에 나가는 후보자는 선거 1년 전에 당직을 내려놓아야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의 대선 출마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일각에선 안 대표의 당선 여부가 박 원내대표의 손에 달려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말까지 안 대표가 당직을 가지게 됨으로써 이후 당 지지율과 함께 울고 웃는 상황이 됐다.

다시말해 국민의당이 국회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안 대표의 지지율이 들쭉날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의 성과는 박 원내대표의 협상력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의 앞으로 활약 여부에 따라 안 대표의 지지율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박 원내대표는 최근 새누리당과 더민주 원내대표 경선에 대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그는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는) 친박이 밀고 (더민주 우 원내대표는) 친문이 미는 모습 아니냐”고 말했다. 두 정당 모두 계파 청산을 지상 과제로 내걸었는데 이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는 계파 없음으로 주목받았다. 이는 이미 ‘진박 역풍’으로 총선에서의 패배를 겪은 새누리당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가 친박이라는 말이 새누리당 내부에서 나오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게 됐다.

한쪽으로
쏠리는 구도

앞서 경선이 있기 전부터 정 당시 후보가 친박계라는 소문이 당내에 돌았었다. 대표적으로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정진석 후보를 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박심’ 최경환 의원은 친박계 유기준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들자 “친박 단일 후보는 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결국 정 후보가 당선되는 ‘가이드라인’이 됐다는 것이다. 언론계에서 정 원내대표는 MB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지만, 박 대통령 관계가 원만해 ‘범친박계’로 분류된다.
 


‘범박’이 당선됨에 따라 7월로 예정된 새누리당 전대에서 친박계 당대표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게 됐다는 후문이다. 이미 친박계가 과반을 넘겨 주류 계파로 올라서 ‘당위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경선에서 승리한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원내) 2당이 됐다고 해서 집권 여당의 지위가 바뀐 게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책임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박근혜정부를 성공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전원이 친박이 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까지 겸임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 원내대표의 계파색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범친박계 정, 전대 변수 급부상
86그룹 우, 김-문 사이 줄타기

더민주 우 원내대표는 운동권 출신으로 86그룹의 리더이자 친문계 인사로 분류된다. 이에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의 관계에서 파열음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예상이 있다.

일찍이 김 대표는 친노 패권주의와 운동권 청산을 외친 바 있다. 1월 달에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친노 패권주의가 당에 얼마만큼 깊이 뿌리박고 있는지를 보겠다”며 “이것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여기(더민주)에 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당내 운동권 성향에 대해서는 “정당이 선거에서 득표하려면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안 되는 시대”라며 “그러한 체제를 탈바꿈하고 정신을 차려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정당으로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 원내대표는 향후 김 대표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예상을 의식했는지 최근 한 종편 채널에서 운동권 청산을 시사했다. 그는 원내대표에 당선된 후 출연해 “과거 운동권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비판하는 논조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20대 청춘 시절에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모든 걸 희생한 노력에 대해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치권에 와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했느냐, 낡은 정치·운동권 문화를 극복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은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 그런 낡은 문화가 있다면 청산하고, 과거 운동권이라고 차별받지 않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더민주 전대는 8월 말로 연기된 상태다. 어느 때보다 이번 더민주 전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향후 김 대표의 거취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앞서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전대 이후 토사구팽 당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실제로 김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간의 불화설은 야권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다.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간의 ‘불안한 동거’는 총선 이후 ‘김종인 합의 추대론’이 나오면서 더욱 불거졌다. 합의 추대론이 힘을 잃었을 때 김 대표 측은 문 전 대표의 입을 주목했지만, 그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배신감을 느낀 김 대표가 대선 주자로 문 전 대표 이외에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때문에 중간자로서의 우 원내대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만약 우 원내대표의 손이 한쪽으로 기운다면 이는 곧바로 당내 파열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피말리는 싸움
전대·대선 좌우

일반적인 시선이라면 자연스레 친문계인 우 원내대표가 문 전 대표와 손을 잡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경제 프레임’으로 총선 승리를 이끈 김 대표의 공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 5일 <한겨레>와 가진 당선 인터뷰에서 호남 참패에 대한 ‘김종인 책임론’에 대해 “야박하다”고 두둔해 당분간 김·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의 고충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최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의 만남에서 소수정당의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4일 있었던 두 원내대표 상견례 자리에서 노 원내대표는 정 원내대표에게 “그동안 진보 정당들이 원내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회에서 많은 설움을 받아왔다”며 “20대 국회는 변화와 혁신의 국회가 되어야하는 만큼 정의당이 더 이상 투명한 정당으로 취급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정 원내대표가 자신 또한 과거 17대 국회 때 ‘국민중심당’이라는 소수 정당의 원내대표로 있었다고 말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나왔다. 앞서 정의당은 지난 3일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서 만장일치로 노회찬 당선인을 원내대표로 추대했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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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