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퇴출 공포> ‘정리 1순위’ 살생부 추적

‘8월 위기설’ 제2의 IMF 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기업구조조정 발언으로 재계는 초긴장 상태다. 이미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되고 살생부 리스트까지 존재한다는 후문이다. 물망에 오른 업계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가운데 살기 위한 몸부림에 나섰다. 급속하게 바뀌고 있는 재계 분위기. 그 흐름을 파악해 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미국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기자들을 만나 “공급 과잉업종과 취약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면서 “이미 비상계획을 세워놨다”라고 언급했다.

정부·정치권 주도
재계 초긴장 상태

유 부총리는 “제일 걱정되는 곳은 현대상선”이라며 “현대증권을 매각하는 등 자구노력 중이지만 용선료 협상이 잘 될지는 자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해선 “고용 등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에 매우 고민된다”고도 했다.

정부는 해운업 회생의 근간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용선료 재협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패 시 법정관리밖에 없다는 엄포를 놓은 상황이라 양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정부의 용선료 협상에 힘이 실리면서 독자생존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앞서 지난달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조선과 해운사의 빅딜이나 합병에 대해 “시기상조이고 적절하지 않다. 5월 중순까지 용선료 협상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선주들도 채권자로서 채무 재조정에 동참하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양사는 이미 발표된 대로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 조정, 협약채권자의 조건부 자율 협약 등 3개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양측은 한 달여의 시간을 벌었지만, 만약 협상이 실패하면 사실상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지난해 경영 정상화를 위해 대대적으로 자산을 매각하고 1500명 이상의 인력 감축을 단행했던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주채권은행과의 협의로 자구 계획을 마련하고 이행 상황 등을 점검해야 한다.

중소형사인 STX조선은 올 하반기에도 경영 정상화 행보를 지속하거나 회생 절차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현대상선 신호탄 구조조정 서막
해운·조선 이어 건설·금융 정리 가시화

이밖에 공급과잉업종으로 분류된 철강·유화 업계에서는 기업활력제고법에 따라 개별 기업 또는 해당 산업이 자발적으로 인수·합병(M&A)이나 설비 감축 등의 구조조정 계획을 진행할 방침이다.

우선 건설업계는 한숨을 돌렸다. 건설업종이 정부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최우선 순위인 경기민감업종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 기업 구조조정의 광풍에서는 벗어났지만 금융권이 돈줄을 옥죌 경우 부실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될 우려가 큰 만큼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경기민감업종으로 선정한 철강과 석유화학, 건설, 해운 가운데 조선과 해운만 경기민감업종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나머지 철강과 석유화학은 과잉공급업종으로 분류해 설비감축과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건설업은 업종 차원의 조정 대상에서 빠졌다. 정부는 지난해 건설수주액이 전년 대비 48.3% 급증하는 등 건설업 전체의 경영 상태에 당분간 불안요인은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민간건설 부분의 수주가 102조5000억원에 달했고, 지난해 공공부문의 발주량도 전년 대비 8.9% 늘어난 28조8000억원을 기록해 당분간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다른 업종과 달리 건설업에 대한 인위적인 산업재편의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개별기업 부실 발생 시에는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워크아웃, 회생절차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현재 시공능력순위 100위권 가운데 워크아웃(기업개선절차)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가 진행 중인 곳은 14개사다. 법정관리가 9곳, 워크아웃이 5곳이다.

또 무자격·부실업체 퇴출시스템 운영과 해외건설 저가수주 방지방안으로 건실한 건설업체 위주로 생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적절한 지원책 없이 결국 건설업계는 기존 금융권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숨 돌렸지만…
자금난 가중

그동안 채권은행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의 재무구조개선만으로 근본적인 정상화를 이루기 어려웠고, 은행도 기업 구조조정 시 당장 대규모 손실이 발생해 한계기업에 대해 여신을 유지하며 처리를 미루는 경향을 보이는 등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대출심사 강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건설사들도 신용등급 하락으로 회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는 등 자금 조달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미 취약 업종으로 분류된 건설사들의 대출잔액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대출잔액은 지난해 3분기 기준 40조3000억원에 그쳤다. 이미 주택업계에서는 은행권의 까다로운 대출규제로 집단대출 거부사태가 속출하며 분양을 늦추거나 취소하는 등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특히나 금융당국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은 대출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집단대출 규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집단대출 규제로 대출거부, 금리 인상 등 피해를 받은 세대수는 총 4만7000호, 금액으로는 7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30위권의 대기업중 3년째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업체가 9곳이나 이르고, 60위권의 중견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300%를 넘어 금융권이나 정부의 자금 지원이 절실한 곳이 많다.

자칫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이 조선, 해운에 집중될 경우 건설업 구조조정은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그간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은 ‘기업 회생’보다는 ‘업계 퇴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M&A를 통해 새 주인을 찾지 못하는 이상 기업 회생은 불가능한 상황에 빠졌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업종이 경기민감업종에서 제외되며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는 했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와 해외시장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결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대상에서 제외돼 그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건설사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판 양적 완화
추진에 야당 제동

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구조조정 방향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더민주 지도부들은 박 대통령이 구조조정을 위해 ‘한국판 양적 완화’와 ‘파견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 지난달 27일 “협조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간담회에서 “한국판 양적 완화를 긍정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구조조정에 앞서 국회가 할 수 있는 파견법부터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고 발언, 실업대책으로써의 파견법을 강조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의 총선공약이었던 ‘한국판 양적 완화’는 한국은행이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증권(MBS)과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채권을 사들여, 산은과 수은이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판 양적 완화가 이뤄지려면 한은이 채권을 사들일 수 있도록 한은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더민주는 양적 완화가 이뤄지면 대기업만 이득을 본다는 입장이다. 파견법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기업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그 안에 몸담은 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실직을 의미한다. 조선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대규모 인원 감축이 우려되는 가운데, 일자리를 잃게 되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정부와 경영진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영 비대위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을 빌미로 노동악법을 밀어붙이거나 부실기업 생존 연장에만 몰두한다면 단호히 협력을 거부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7월말 업종별 경영진단 보고서
사실상 부실기업 리스트 담아

진 비대위원은 특히 전날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나온 가이드라인에 대해 “조선과 해운업 사태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과 정부의 실패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며 “사태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도,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도 없이 모호함만 가득했다”고 혹평했다.

그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정확한 원인 진단과 부실·방만 경영 책임자에 대한 문책, 구조조정으로 인한 국민 피해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계획을 정부가 제시한다면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진형 더민주 전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 역시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양적 완화 양적 완화하는데, 거기다 대놓고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지 못하겠다”며 “(박 대통령은)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큰 기업이니까 국가가 돈을 내줘야 한다는 식으로 조건반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라며 “경영진과 주주, 채권단 등이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수하고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5대 취약업종 가운데 특히 대규모 실직 우려가 큰 곳은 조선업계.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세 곳 직원만 총 4만4000여명인데다, 협력업체까지 따지면 수십만명의 생계가 달려 있다.

노동계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책임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노동자를 해고하기 전에 경영부실을 초래한 대주주와 경영진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도 기자회견을 열고,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이 개인 재산을 내어서라도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정부가 1년 동안 고용 유지 지원금이나 연장 실업수당 등을 지원하고, 전직과 재취업 훈련 등을 돕게 된다.

좀비기업 타깃
강제로 아웃!

구조조정의 큰 틀을 정한 정부는 8월을 주시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퇴출의 기준이 될 기업활력촉진법 이른바 원샷법의 8월 시행에 맞춰 사실상의 ‘살생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7월 말까지 ‘업종별 경영진단 보고서’를 협회를 중심으로 만들도록 지시했다.

보고서가 나오는 시점에 맞춰 6월까지 ‘기업의 생존과 퇴출’의 기준이 되는 원샷법 실무지침도 만들어진다. 정부는 업종별 보고서와 원샷법 실무지침, 여기에 대기업 신용위험평가까지 나오는 8월을 2차 구조조정의 적기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의 파도가 거세지는 가운데, 오는 8월 또 한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몰아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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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